마추픽추: 발견과 논쟁
마추픽추의 발견
페루 안데스 산맥에 자리잡은 고대 잉카 도시 마추픽추의 발견은 논쟁에 휩싸여 있다. 미국 탐험가이자 역사가 히람 빙햄 3세는 1911년에 이 유적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 전에 다른 사람들이 이 유적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빙햄의 탐험대는 지방 농부들과 페루 경찰의 안내를 받아 1911년 7월 24일에 유적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울창한 정글 속에 숨겨진 정교한 석조 구조물과 계단식 농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빙햄이 작성한 발견에 대한 기록이 1913년 하퍼스 먼슬리에 게재되면서 마추픽추는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빙햄의 발견에 대한 논쟁
빙햄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페루 고고학자들은 그가 마추픽추를 방문한 최초의 외부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보다 앞서 새겨진 글자의 증거와 빙햄이 도착하기 전에 그 지역에 독일, 영국, 미국 탐험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빙햄의 발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 한 명은 페루 인류학자 호르헤 플로레스 오초아이다. 그는 빙햄이 “학문적 지식은 더 많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1916년에 타임즈에 보낸 편지에서 독일 광산 엔지니어 칼 헤넬은 1910년에 탐험가 J.M. 폰 하셀과 함께 마추픽추를 방문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문서는 제시하지 않았다.
빙햄 자신조차도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유적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1913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에 보낸 편지에서 “쿠스코에서 단지 5일 거리에 있는 이 도시가 그토록 오랫동안 묘사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믿을 수 없었다”고 썼다.
마추픽추의 과학적 발견자
빙햄의 발견 주장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그가 마추픽추를 세계에 알린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다. 그는 그 유적에서 광범위한 연구와 발굴을 실시하여 건축적 경이로움과 문화적 중요성을 기록했다.
빙햄이 가르쳤던 예일대학교의 인류학 교수 리처드 L. 버거는 빙햄이 “마추픽추에 발을 들인 최초의 현대인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빙햄이 유적의 “과학적 발견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마추픽추의 유물과 유해
빙햄은 마추픽추에서 수많은 유물과 유해를 가져왔고, 이것들은 현재 예일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페루 정부는 이것들이 페루 국민의 소유이며 원산지에 보존되어야 한다며 이들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2007년에 예일은 더 많은 연구를 위해 일부를 보관하는 조건으로 대부분의 유물을 반환하기로 동의했다. 그러나 페루 정부는 2017년에 전체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예일과 페루 간의 지속적인 법적 싸움은 문화 유물의 소유권과 반환을 둘러싼 복잡한 윤리적, 법적 문제를 강조한다.
마추픽추의 유산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마추픽추는 페루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 멋진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은 계속해서 전 세계 방문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마추픽추를 둘러싼 발견과 논란은 역사 연구의 중요성과 문화 유산의 소유권 및 보존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을 강조한다.